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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들하십니까?에 대한 40대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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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이 넘었다. 올해가 가면 빼도 박도 못하는 정말 40대다. 마흔이 넘어가고 있는 나에게 지난 주 한 대학생이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이 질문을 받은 후 답변을 하기 위해 생각해 봤다. 나는 정말 안녕한가? 물론 안녕하지 못하다. 하지만 "안녕하지 못하다."라는 짧은 답변을 하고 넘어가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남아 몇 일을 고민한 후에 나만의 방식으로 답변을 해본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마흔이 넘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한편으로 같이 하지 못함에 미안한 마음이 있거나,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자기 위안을 할 가능성이 높다. 괜찮다.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같이할 수 없음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이런 질문에 답한다고 한번에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 번의 미안함을 계기로 자신의 삶 속에서 한 가지씩의 변화만 만들고 지속할 수 있어도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할 때 마흔이 넘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변화는 너무나도 많다.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들의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는 것이다. 아이들을 경쟁속으로만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배려하고, 소통하고, 공생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가장 큰 책임이다. 서로 배려하고, 소통하고, 공생하도록 아이를 키우면 아이들을 힘들고 험한 환경 속으로 밀어 넣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맞다. 어쩌면 경쟁 속에 밀어 넣어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아이들이 더 편하게 사는 삶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말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여러분은 경쟁 속에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이 정말 행복한가?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힘들어도 경쟁보다 공생하는 사회를 꿈꾸리라 확신한다. 경쟁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은 우리 어른들이다.

나 또한 아이들 교육에 있어 아내와 항상 의견이 다르다. 하지만 계속해서 설득하고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을 키운다. 우리 다음 세상은 지금과 같아서는 안된다고... 현재 자신의 아이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공부하고 있는지, 경쟁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돌이켜보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안녕들하십니까?"에 대한 답변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더 책임있고 의미있는 답변을 하는 것이다.

"안녕들하십니까?"에 대한 답변은 직장 생활을 통해서도 할 수 있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불합리한 요구나 항상 강자 편에서만 서야하는 상황이 많이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조금씩 노력하고, 불합리한 요구에 "아니다."라고 대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지난 주말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와 같은 상황이 생길 수 있는 이유는 현재 우리가 맡고 있는 일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닌 것에 아니라고 이야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불합리한 요구에 아니라고 말하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용기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것도 "안녕들하십니까?"에 대한 답변이다.

마흔이 넘은 우리들이 "안녕들하십니까?"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길거리로 뛰어나가는 것이 진정한 답변이 아니다. 이 질문에 진정한 답변을 하려면 먼저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고,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노력부터 하자. 그 젊은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먼 곳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내 주변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세상은 서서히 바뀐다. 하지만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오지 않거나 정말 더디게 온다. 내가 꿈꾸는 세상이 있다면 나부터 바뀌고 내 주변부터 바꿔 나가보자. 우리 아이들에게도 지금과 같은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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