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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린 UX를 통한 애자일 프로세스의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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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애자일 프로세스를 프로젝트에 처음 적용했던 해는 2008년이다. 애자일 프로세스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지만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는 반드시 애자일 프로세스로 진행하고 싶었다. 책을 통해서 간접 경험은 많이 했지만 프로젝트에 실제로 적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정말 수 많은 시행 착오를 하면서 애자일 프로세스를 하나씩 적용해 나갈 수 있었다. 애자일 프로세스가 팀 전반에 확대되는데 최소 6개월 이상 걸린 듯 하다. 물론 6개월 이전에도 느끼는 바가 많기는 했지만 우리들 몸 속에 베이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6개월도 짧은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흐른 뒤부터 내가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팀원들이 변화를 주도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음을 느꼈다.

2년 이상을 애자일 프로세스 기반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애자일 프로세스를 적용할 수록 아쉬움이 남았다. 그 아쉬움의 원인이 무엇일까 고민한 결과 애자일 프로세스가 개발팀에게만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초기 기획자들과도 마음이 잘 맞아 기획자까지 확대되기는 했지만 그 이상 확대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와 같이 일부 조직과 직군에서만 애자일 프로세스를 적용하다보니 병목이 다른 곳에서 발생하는 것을 느끼면서 아쉬움이 남았던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는 이런 아쉬움을 극복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를 옮겼다. 회사를 옮기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기획, 개발, 디자인, QA가 한 팀에서 같이 일할 수 있는 조직 구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이라면 내가 꿈꾸는 모습으로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나의 기대는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기획, 개발, QA는 일정 부분 애자일 프로세스 기반으로 일하는 것에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극복하지 못한 영역이 디자인 영역이었다. 이전 회사에서도 가장 극복하기 힘든 직군이 디자이너였다. 디자인 영역은 내가 가장 생소한 부분이기도 했기 때문에 더 강력하게 변화를 만들어 가기 힘들었다. 항상 돌아오는 답변은 디자인은 프로그래밍과 다르다. 우리는 애자일 프로세스 기반으로 작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같은 팀이라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팀, 다른 팀의 이슈가 아니었다. 디자인이라는 작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마인드의 이슈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디자인 직군까지 애자일 방식으로 일하기는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아직 개발 직군도 애자일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인데 개발 직군이라도 잘하자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내 정신 건강을 생각하면 이와 같이 자기 합리화하는 것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냥 포기하고 살기로 했는데 갑자기 Lean UX라는 책이 등장했다. 디자이너들 본인들이 애자일 프로세스와 통합을 이야기하고 있다. 애자일 방식의 사고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에 얼마나 많은 국내 디자이너들이 호응하고 동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까지 애자일 프로세스에 관심이 많았던 나 같은 개발자가 이 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나 같이 포기하고 살려고 했던 수 많은 사람들에게 디자인도 애자일 방식과 같이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디자이너 내부적으로도 지금까지의 작업 방식으로는 현재와 같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 대응하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물론 이 책이 등장했다고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애자일 프로세스도 아직까지 국내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에게 변화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Lean UX 프로세스로의 변화는 기존의 디자이너가 주도하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물론 관심이 있는 일부 디자이너에 의해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지만 기존의 타성과 주변 디자이너의 영향 때문에 변화를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보다는 최근 모바일이 급부상하면서 관심도가 높아진 UX 디자이너(정확한 직군 이름은 잘 모르겠다. 단, 기존 UI 디자이너와는 역할이 다르다고 본다.)가 주도해야 한다고 본다. 기존의 UX 디자이너의 역할을 보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이 책에서 그 역할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UX 디자이너가 UX와 더불어 UI 디자인까지 담당하면서 변화를 주도할 때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내가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다. 제 3자의 입장일 뿐이다.

이 책에서 Lean UX를 주도할 UX 디자이너의 역할을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 직군과 연결해보면 다음 정도이지 않을까? 기획자가 담당하던 프로젝트 관리와 일부 기획, UX, UI 측면을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직군과의 협업을 도모하면서 우리가 만들어야할 서비스의 가치에 집중하는 디자이너라면 한번쯤 도전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프로그래밍 직군에도 느끼는 것이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프로그래머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프로그래밍 능력보다(물론 기본 실력은 되어야 한다.) 협업 능력에 대한 비중이 더 높아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 같은 변화가 디자이너에게로 확대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잠시 멈추었던 도전을 다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면 Lean UX와 애자일 프로세스를 결합할 수 있는 시도를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