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머에게 중간기술이란 어디까지인가?

2016-06-09 12:32

E.F 슈마허가 쓴 "내가 믿는 세상"을 다시 읽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일환이었다.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은 상황에서 아직까지 명확한 방향성을 찾았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어떻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인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지금과 같은 삶 속에서 이를 실현하기란 넘어야할 산이 많다.

어렸을 때 고향 마을에 이해가 되지 않는 동네 어르신이 한 분 계셨다. 주변의 다른 분들은 모두 경운기와 같은 농기계로 농사를 짓는데 유독 그 분만은 소를 이용해 논을 갈고, 소 달구지를 타고 다니셨다. 기억하기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는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시대적인 분으로 치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의 농촌의 상황은 어떠한가? 시대에 발맞춘다는 이유로, 효율성을 높이고, 생선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대형 농기계를 활용하고, 비료와 농약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되면서 농민들은 과거보다 점점 더 가난해졌다. 농기계회사, 비료회사, 농약회사에 비용을 지불하면서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 회사들에 종속된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농업에서 일어났던 변화는 우리 프로그래밍 업계에도 발생하고 있다. 효율화와 비용절감이라는 명목하에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는 사라지고 돈이라는 측면에서 대부분의 결정이 내려지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국내 많은 회사들이 전환하고 있는 아마존 웹 서비스(이하 AWS)에 대한 활용은 진정 우리를 위한 것인가? 결국에는 우리가 AWS에 종속되는 신세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장기적으로 비용 절감을 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농업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 않은 듯하다. 또 하나의 예로 바퀴를 다시 발명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이미 구현되어 있는 좋은 프레임워크와 라이브러리를 쓰면 되지 뭐하러 바퀴를 다시 발명하는가? 그렇다면 바퀴를 다시 발명함으로써 그 경험을 통한 개발자들의 역량 향상과 행복감은 버려도 되는 가치인가? 이에 대한 적정한 선은 어디인가?

농업이 그러했듯이 현재 우리 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수 많은 실업자를 양산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와 같이 실업자를 양산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발전하는 것이 진정한 발전인가?

우리가 나가야할 기술 발전은 "내가 믿는 세상"에서 이야기하듯 다음과 같은 방향이어야 하지 않는가?

  • 작은 것
  • 단순함
  • 자본의 저렴화
  • 기술적 비폭력

위와 같은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대량 생산이 아닌 대중에 의한 생산"이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 가야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선택할 기술들은 무엇인가? 지금 정도의 지적 자원이라면 위 목적에 적합한 중간 기술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상태이다.

이 책이 이야기하듯 나는 아이들(젊은이)에게 다음과 같은 자유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 나는 내 일을 하고 싶다.
  • 나는 (비교적) 단순하게 살고 싶다.
  • 나는 가면이 아닌 사람과 거래하고 싶다.
  • 사람이 중요하다. 자연이 중요하다. 아름다움이 중요하다. 전체성이 중요하다.
  • 나는 무언가를 보살필 능력을 갖고 싶다.

우리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상황을 부정하고 있다.

  • 나는 생쥐들의 경주에 참가하고 싶지 않다.
  • 나는 기계, 관료제, 권태, 추한 것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
  • 나는 저능아, 로봇, 통근자가 되고 싶지 않다.
  • 나는 사람의 파편이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부정하고 있는 저 상황으로 점점 더 몰아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 프로그래머들이 그 속도를 더 가속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6년.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할 것은 무엇인가? 프로그래머로서 "작은 것, 단순함, 자본의 저렴화, 기술적 비폭력"을 지향하는 삶이란 어떠한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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